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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예전에 읽은 거 같은데 줄거리가 전혀 기억이 안나서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읽게된 경우다. 술술 잘 넘어가지는 책이냐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게 메그레 시리즈 중에 유난히 집중이 안 되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내가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뭔가 문제적인 인물이 언급되는데 얼마나 악당인지 충분히 소개가 안되고 기차 살인 사건이 주어지는데 어떤 맥락인지 감 잡기 힘들다. 메그레 형사는 작은 실마리로 그 사건을 추적해 들어가는데 마치 허깨비를 쫓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왜 악당인지 잘 모르겠는 인물을 흐릿한 단서를 통해 종잡을수 없이 추적하는 것이다.

근데 중반부 넘어갈 무렵 유력한 용의자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탄력이 붙고 엄청 흥미진진해진다. 그러면서 조르주 심농이 짜놓은 얼개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는데 상당히 탄탄한 플롯이다. 묵뚝뚝하고 불친절하게 사건과 용의자, 살해자를 소개한 것이 과연 그럴만하고 설득력이 있다. 메그레는 그야말로 유령의 자취를 쫓고 있었던 것. 그리고 범인의 자리에 그림자랄까 얼룩같은 사내가 남겨진다.

이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심농의 작품에는 대체로 인간에 대한 메그레의 깊은 연민이 깃들어 있다. 메그레의 사건 일지는 탁월한 추리가 있다거나 주인공이 분위기가 근사하고 재치가 있는 경우도 아니다. 대신 거대한 덩치의 중년 남자가 직관적으로 범죄를 추적하는 무심한 집념과 범죄자를 바라보는 투박하지만 깊은 페이소스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한 작품을 큰 기복없이 꾸준하게 써낸 조르주 심농도 정말 대단한 사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예전에 읽은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롭게 읽다가 중반부 아끼던 부하형사가 살해당한 부분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구절을 발견하고 정말 읽었던 것 맞구나 싶었다.

'전쟁이 한참이던 무렵, 총공세를 앞둔 장병들 역시 이처럼 터무니 없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참호를 뛰쳐 나가곤 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읽어도 묵직하고 멋진 구절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삼사십대는 필립 말로우처럼, 오육십대는 쥘 메그레처럼 보내고 싶다.

티비에서 영국판 '경감 메그레'를 방영하는 모양인데 주인공이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완 애킨슨이다. 예측해보자면 로완 애킨슨의 메그레는 영국적인 꼿꼿한 사내일 꺼 같다. 하지만 메그레를 묘사하는데 중요한 것은 위압적이고 압도적인 덩치의 존재감과 그러한 육체로부터 품어져 나오는 넉넉한 여유이고 그와 대비되는 회색빛의 사유이다. 그 매력을 놓친다면 이미 메그레가 아닌 거 아닐까.

어쩌다보니 번역된 메그레 시리즈를 거의 다 읽은 거 같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생폴리앵에 지다'를 뽑고 싶다.